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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인 6월 2주 GQS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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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15-06-08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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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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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인 2015년 5/6월호, pp. 226-227)
6월 2주 | 예수님의 사역
본문|누가복음 4:31-44 (6월 13일 본문)
찬송|새391 통446 (오 놀라운 구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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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눅 4:43)
1. 마음열기
나는 하루 중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기쁘고 보람됩니까?
2. 본문 이해하기
고향에서 배척을 받고 가버나움으로 오신 예수님이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귀신을 꾸짖어 나가게 하십니다. 열병을 앓던 시몬의 장모와 온갖 병자들을 고쳐주신 예수님은 떠나지 못하게 막는 무리에게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 말씀으로 나눔하기
① 말씀을 가르치신 예수님 (31-37절)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신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실 때 그의 권위에 놀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인 것을 알면서도 ‘예수와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냐’며 소리 지르는 귀신들린 자가 있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었을 텐데 그는 왜 예수님과 자신이 상관없다고 소리를 지른 것일까요? 혹시 나도 교회는 열심히 출석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구원과는 아무 상관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34절)
복음이 증거될 때 사람들의 반응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내게 주신 말씀’으로 듣고 회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뭔가 알 수 없는 권위에 압도되어 놀라기만 하는 사람이 있고, 오늘 본문의 귀신들린 사람처럼 ‘예수님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회당 안에 있던 귀신들린 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하며 마치 믿음이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또한 여기서 ‘우리’라고 하는 것을 통해 그들도 공동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는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들의 모임이기에 오히려 공동체를 교란시키며 훼방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면서도 정작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는 영접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믿음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는 지식적인 믿음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귀신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이들과 같은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속의 이런 귀신들이 떠나도록 늘 말씀으로 자신을 살피며 꾸짖어야 합니다.
②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 (38-41절)
예수님은 열병을 앓던 시몬의 장모와, 소문을 듣고 온 온갖 병자들에게 일일이 손을 얹어 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시몬의 장모는 병에서 나은 후 수종드는 것을 허락하시는데, 귀신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리 지르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수종들고, 또 수종받기 원합니까? 혹시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까? (41절)
예수님은 열병을 앓다가 고침받은 시몬의 장모가 수종드는 것은 허락하시는데, 귀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는 것은 허락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숨기신 이유는 우선 십자가 사역이 방해받을까 봐서였고, 또 제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귀신에게 증거받기를 허락지 않으신 것은 귀신의 증거가 죄에서 돌이켜 회개한 신앙고백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진 삶의 흔적이 없는 지식적인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즉, 이것은 믿음의 고백이 아닌 입술의 증거에 불과했습니다. 한편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에 목을 매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믿음생활에 독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분별없이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해 하나님을 앞지르는 열심을 낼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내 속의 이런 죄를 보고 애통해야 합니다.
③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 (42-44절)
안식일에 말씀을 전하고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이 열광하는 무리를 떠나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다른 동네로 떠나시는 것을 만류하는 무리에게는 당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열광하는 무리를 떠나 한적한 곳으로 가시고, 떠나지 못하게 막는 무리에게는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신 후 떠나십니다. 나는 예수님처럼 떠날 때와 머물 때를 잘 압니까? 내 속에 있는 욕심과 시기와 미움을 떠나보내고, 나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을 떠나 안식할 나의 한적한 곳은 어디입니까? (43절)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은 말씀을 가르치실 때와 병자를 고치실 때 나타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숨을 때와 드러내실 때, 떠날 때와 머물 때, 기도하실 때와 가르치실 때와 고치실 때를 분별하심으로 그 능력을 나타내기도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무리를 피하신 것은 무리가 말씀을 사모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병을 고침받고 또 다른 기적을 보기 위해 모였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 것을 채워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예수님을 찾아다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러 이 땅에 오셨기에, 무엇보다도 복음을 가장 들려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열광과 인정, 칭찬을 떠나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떠나신 것입니다.
4. 구속사로 해석하기
예수님의 사역은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전파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런 예수님의 사역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귀신들린 자와 온갖 병자, 열병에 걸린 시몬의 장모까지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자신을 붙잡는 무리를 떠나 다른 동네로 복음을 전하러 가십니다. 예수님은 하루하루 구원 때문에 분초를 아끼며 사역하시는데, 죄에서 자신을 구원해주러 오신 예수님이 회당 안에서 말씀을 가르치셔도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게다가 무리는 기적을 보려고 예수님을 찾아다닙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의 병을 짊어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참 목적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시기 위함입니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개인|교회에서 열심히 충성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예수님과 상관없는 귀신같은 믿음, 지식적인 믿음일까 봐 두렵습니다.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아멘.
공동체|우리 공동체에 가르치고, 고치고, 복음이 선포되는 구원 사역이 치우침 없이 잘 이루어지게 해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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