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QS 청장년
큐티인 2017년 2월 4주 GQS 해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17-02-16본문
GQS 해설은 매주 목요일에 순차적으로 업로드됩니다.
감사합니다.
큐티인 편집부
================================================
(큐티인 2017년 1/2월호, pp.282-283)
2월 4주 |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본문|요한복음 18:1-11 (2월 24일 본문)
찬송|새143 통141 (웬말인가 날 위하여)
핵심 구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 18:9)
-----------------------------------------------------------------------------
1. 마음 열기
나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그럴 때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2. 본문 이해하기
유다가 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로 예수님을 잡으려고 옵니다. 그러나 이 고난이 아버지가 주신 잔이요, 말씀이 응하는 사건임을 아신 예수님은 그들 앞에 당당히 나아가 제자들을 보내주길 청하시고,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벤 베드로에게 칼을 다시 칼집에 꽂으라고 하십니다.
3. 말씀으로 나눔하기
① 예수를 파는 유다 (1-3절)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 지실 줄 알면서도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우리도 십자가 질 곳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고난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동산까지 따라가는 제자들이 있고, 무기까지 동원해 팔아넘기려는 유다가 있습니다. 나는 어떤 제자입니까? 내가 가진 능력과 권세가 무기가 되어 말씀이 응하는 것을 더디게 하지는 않습니까? (1-3절)
기드론 시내는 ‘탁류’라는 뜻으로 다윗이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울면서 건넜던 시내입니다. 예수님도 어둠과 혼돈의 탁류를 지나 ‘기름틀’이라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십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의 제자인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 위해 무기와 사람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옵니다. 아마 우리 믿음의 여정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어둠과 혼돈의 때가 임하고, 기름을 짜는 듯한 고통이 오는가 하면 3년여 동안 삶을 나누며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환경을 만나고, 사랑하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이때가 말씀이 응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 사람들의 무기인 권세에 잡히거나, 자기 힘이 없어서 힘 있는 사람에게 팔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가 임했기에 잡히고 팔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를 파는 사람을 향해 분노하며 내가 갖고 있는 무기로 그를 대적하면 안 됩니다. 이 고난의 때는 예수님처럼 잡히는 모습을 보여주며,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나의 세상 무기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자녀된 능력을 보여주는 때입니다. 즉, 삶으로 복음을 증거할 때인 것입니다.
② 내가 그니라 (4-9절)
자신이 당할 일을 아신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오는 유다와 무리에게 당당히 나아가셨습니다. 나는 배반과 무시와 질병의 고난에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당당합니까? 내가 찾는 구원자 예수님은 나사렛 출신의 목수 아들입니까, 아니면 돈 있고 유능한 사람입니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붙여주신 영혼인 것을 인정합니까? (5절)
자신이 당할 환난을 미리 아신 예수님은 제자에게 팔리는 현실 앞에서도 당당하셨습니다. 이렇게 복음은 장차 받을 환난이기에(살전 3:4), 장차 당할 환난을 늘 예비하는 인생만큼 능력 있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질병과 배반과 부도의 어려움이 찾아올 때 “내가 그니라” 하셨던 예수님처럼 이것이 ‘있어야 될 일’임을 인정하며 고난 앞에서 빛을 발하는 인생을 삽니다. 또한 그는 자신에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않으려고 하신 예수님처럼, 영혼 구원 때문에 힘든 사람을 붙여주신 것을 인정하며 말씀과 삶으로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그러나 유다와 함께 왔던 무리가 “나사렛 예수”라며 예수님을 무시하는 표현을 한 것처럼, 세상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며 당당히 십자가 지는 사람을 결코 격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광신도, 바보, 고지식한 사람”이라며 그를 조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얼마나 악한지 알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를 조롱하는 악한 세상을 물러가게 하고 땅에 엎드리게 하는 것은 당당히 복음을 전하고 내 죄를 인정하며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믿음으로 십자가를 지는 것뿐입니다(히 11:38).
③ 아버지께서 주신 잔 (10-11절)
십자가 앞에서 내가 가진 무기와 혈기로 대항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잡으려는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는 혈기를 부립니다. 고난의 잔이 마시기 싫어서 휘두르는 나의 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말고의 귀는 낫게 해주시고(눅 22:51), 베드로에게는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하신 것처럼 인생 끝날까지 내가 주님의 사랑으로 끝까지 사랑하고 양육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10-11절)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 주시는 고난의 잔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생은 그 잔을 피하고자 할 수만 있으면 자신이 가진 돈과 권세와 인맥을 휘두릅니다. 그리고 떼 부리는 기도와 인정받기 위한 신앙 열심으로 하나님이 주신 잔을 밀어내며 내가 살기 위해 예수님을 팔고, 혈기의 칼로 주위 사람들을 베어버립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이 주신 잔을 마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팔려고 찾는 유다에게는 “내가 그니라” 하며 당당히 말씀하시고, 말고의 귀는 붙여주시며, 베드로에게는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하시며 고난의 쓴잔을 받으셨습니다. 내게 허락하신 힘든 가족, 물질 고난, 취업과 직장에서의 어려움에도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내가 휘두르던 칼을 다시 칼집에 꽂고, 베어 내고 싶은 힘든 사람들을 끝까지 품고 가는 고난의 잔을 마실 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게 되고 비로소 말씀이 응하는 인생이 됩니다.
4. 구속사로 해석하기
예수님은 이 땅에서 33년의 짧은 생을 살다 가셨지만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19:30).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의 죄를 사해주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구원의 길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목자 없는 양 같은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은 하나님나라에 대해 가르치시고, 병자를 고치시며, 복음을 선포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순종함으로 십자가 지는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이렇게 구원 때문에 사는 인생은 말씀이 응하는 인생이고, 다 이루는 인생입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과 가르침을 받은 제자에게 고작 은 삼십에 팔리시는 것도, 제자가 혈기를 부릴 때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권면해주시는 것도, 말고의 귀를 고쳐주시는 것도 말씀이 응하는 것입니다. 삶에서 직면하는 슬픔과 기쁨, 팔고 팔리는 배반, 인간관계에서 당하는 고통 등 이 모든 사건은 말씀이 응하는 일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며 영혼 구원을 위해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실 때, 우리도 ‘다 이루었다’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개인|돈과 권세를 무기로 휘두르며 아버지가 주신 잔은 써서 마실 수가 없다고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다 은 삼십도 안 되는 밥 한 그릇과 달콤한 말 한마디에 예수님을 팔기도 했습니다. 저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그 잔을 마시게 하기 위함임을 잊지 않게 해주옵소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