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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인 4월 4주 GQS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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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16-04-18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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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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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인 2016년 3/4월호, pp.270-271)
4월 4주 | 야곱과 에서의 화해
본문|창세기 33:1-17 (4월 20일 본문)
찬송|새421 통210 (내가 예수 믿고서)
핵심 구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 (창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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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 열기
내가 오랫동안 사과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나, 또는 사과받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2. 본문 이해하기
20년 동안 에서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던 야곱이 드디어 형 에서를 만나 일곱 번 땅에 굽혀 에서에게 절하고, 야곱의 가족도 그에게 절합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많은 가축을 예물로 주며 두 사람은 아름다운 화해를 합니다. 그러나 에서는 세일로 가고,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집을 지으며 각자 다른 길을 갑니다.
3. 말씀으로 나눔하기
① 일곱 번 땅에 굽혀 절하고 (1-7절)
야곱은 에서에게 일곱 번 땅에 엎드려 겸손히 절하며 형의 축복을 가로챘던 자신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20년 동안 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화해를 합니다. 이렇게 나의 죄를 인정함으로 내가 화해를 청할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 그 사람과 화해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잘못보다 상대방의 잘못만 들춰내고 있기 때문은 아닙니까? (3절)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 신앙을 갖게 된 야곱은(창 32장) 이제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는 에서를 두려움의 시선이 아닌 믿음의 시선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겨를도 없이 먼저 자신이 에서에게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하는 겸손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일곱은 완전수로, 여기서 그가 일곱 번 절했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계속적이고 진정성 있게 회개했음을 의미합니다. 야곱 한 사람의 이런 회개와 변화가 있었기에 에서가 야곱에게 달려와 서로 입 맞추며 울고, 가족들도 절하는 아름다운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화해는 사람과의 화해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의 화해입니다. 에서를 만날 때 해를 당할까 봐 여종과 그 자녀들을 먼저 보내는 야곱을 보며 아직도 그가 가족을 차별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차별당한 여종들의 가족이 제일 먼저 에서에게 절했듯이, 사람에게 차별받는 상처로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며 천국을 누리게 되면 어떤 상처를 받아도 화해하지 못할 일이 없게 됩니다.
② 예물을 받으소서 (8-11절)
야곱은 에서와 화해하기 위해 땅에 엎드려 절만 하지 않고 그에게 많은 가축을 예물로 주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모은 재물이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기에 에서에게 주는 것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화해를 청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를 위해 나의 물질을 희생하는 것이 아깝습니까? 하나님은 물질의 헌신보다 몸으로 헌신하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며 상대를 위해 물질을 희생하지 않는 것을 합리화하지는 않습니까? (11절)
화해에는 반드시 물질이 따라가야 합니다. 진정성 있는 회개는 말과 행동으로도 드러나지만 아낌없이 물질을 드리는 것으로도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에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다섯 번이나 합니다. 야곱이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인도해주시고, 자신에게 가족과 재물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임을 고백합니다. 이런 믿음이라면 에서에게 예물을 주는 것이 아깝지 않을뿐더러 더 많이 주고 싶어집니다. 이처럼 죽음에 이르는 겸손은 사람을 감동시켜 화해에 이르게 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무엇보다 가족과의 화해가 제일 힘든 법인데, 특히 형제간의 화해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와의 화해든지 그것은 나 자신과의 화해이며, 하나님과의 화해입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누군가를 향해 비난하는 것과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최고의 헌신이고 예물이며 온전한 화해에 이르는 길입니다.
③ 그러나 같이 갈 수 없는 길 (12-17절)
20년 만에 야곱과 화해한 에서가 야곱에게 자신과 함께 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화해를 했어도 에서는 약속의 땅이 아닌 세일로 가기에 야곱은 그와 같이 갈 수 없습니다. 지금 믿지 않는 자와의 결혼이나 동업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길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거절하는 것이 힘들어서 믿지 않는 자를 따라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6-17절)
20년 만에 돌아와 에서에게 엎드려 절하고 예물을 주며 아름다운 화해를 한 야곱에게 에서와의 마지막 시험이 왔습니다. 16절에 에서가 ‘돌아갔다’는 것은 “그의 길로 갔다”, “자기 뜻대로 갔다”는 의미입니다. 에서는 믿음의 부모인 이삭과 리브가의 자녀로 모태신앙이었지만 이미 우상에 깊이 빠져 하나님을 떠나버렸습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세일까지 호위해줄 테니 함께 가자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 함께 세상으로 가자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원수 같은 관계보다 에서처럼 호의를 베풀 때 거절하는 것이 훨씬 힘듭니다. 그러나 형제 우애만으로 함께 갈 수 없는 길이 믿음의 길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에서에게 자신은 연약한 자를 돌봐야 하기에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세일로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군대의 도움을 받겠다며 정중하고 단호하게 에서의 호의를 거절합니다. 야곱은 에서의 호의를 분별하고 거절했지만, 벧엘로 가지 않고 자기를 위해 숙곳에 집을 지으며 중도에 머무는 연약함을 보였습니다.
4. 구속사로 해석하기
야곱과 에서가 형제였음에도 20년 동안 화해하지 못했듯이 우리도 자신의 잘못이 인정되지 않거나 혹은 상대방이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까 두려워서, 또는 이해타산에 얽혀 나의 옳음을 주장하느라 화해를 미룰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이 에서에게 행한 겸손한 말과 행함, 그에게 예물을 드리는 것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화해해야 되는지 말씀해주십니다. 화해는 사람과 해야 하지만, 화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낮고 겸손한 자리로 내려가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사람이고 유사 그리스도인은 구원될 뻔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에서처럼 유사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고, 비록 거짓말쟁이요 속이는 자일지라도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야곱처럼 신앙고백으로 화해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야곱이 형 에서와 화해했지만 그를 따라가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믿지 않는 자와 화해는 하지만 그와 같이 갈 수는 없음을 교훈으로 받아야 합니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개인|에서와의 화해는 결코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라,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집마다 자기의 길을 가는 믿지 않는 형제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들을 구원해주옵소서.
공동체|공동체는 죄인들이 모인 곳이기에 갈등도 많고, 미움도 많고, 서로 용서를 구하고 용서해야 할 지체도 많음을 고백합니다. 공동체 지체들이 서로를 겸손히 섬기며 하나님 앞에 먼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화해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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