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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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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 신학] 고백 공동체 형성’을 위한 담임목사의 역할(Ⅲ) - 2013. 12월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5-03-20

본문

고백 공동체 형성’을 위한 담임목사의 역할(Ⅲ)


이번호에서는 고백 공동체를 위한 담임목사의 역할 마지막 순서로 다윗의 아둘람 공동체와 내가 섬기는 우리들교회의 정체성과 소그룹인 목장을 살펴봄으로써 고백 공동체에 수반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나누고자 한다.


아둘람 공동체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삼상 22:1-2>


다윗이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로 도망했을 때, 그곳에 환난 당한자, 빚진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모여들었다. 다윗이 모집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다윗에게 가면 살 길이 있다고 생각하고 모여든 것이다. 사실 다윗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다윗에게 유일하게 있었던 것은 이들이 경험하고 있던 ‘환난’이었다. 다윗을 찾아온 이들은 그의 고난을 보고 듣기만 해도 공감이 되었고, 다윗 또한 그들을 체휼했다. 그래서 다윗이 왕궁에 있을 때 보다 동굴에 있을 때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든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서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이니요’라고 말씀한다. 바로 이것이 체휼이다. 주님은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셨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공감해주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힘이 되기 때문이다. 저마다 절대치의 고난이 있기에 그것 때문에 힘들어 한다. 그래서 다윗의 경험은 사람들을 공감해주고, 그들을 살리는 최고의 약재료가 되었다. 하지만 경험만 갖고는 불가능하다. 다윗은 자신을 찾아온 힘든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하면서 말씀을 보고 또 보았다. 이들의 고난을 묵상하고 자기고난을 위해 묵상하다보니 세상이 줄 수 없는 말씀의 깊은 보석을 캐내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도움을 갈망하며 다윗은 말씀을 묵상하고 읆조렸다. 그리고 주옥같은 시편을 써내려갔다. 그러다보니 힘든 공동체가 결국 다윗을 살리고, 공동체가 다윗 때문에 살아났다. 말씀의 보석을 캐며 말씀에서 자신의 삶이 해석되니 부러운 것이 사라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아둘람 공동체로 왔던 까닭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칠고 상처 많은 오합지졸이 모였지만 양육이 되었고, 이곳에서 다윗왕국의 각료들이 모두 나왔다. 말씀이 있는 사람들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지만 악인은 하나님이 없기에 한 번에 무너진다. 혼자서 교양있게 이겨보려 하지만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 또한 은혜받기 위해서 성경을 읽었다기 보다는 죽지 않고 살려고 읽었다. 그리고 힘든 사람들이 몰려오니 이들을 위해 대신 묵상하게 되고 한 가지씩 순종할 때마다 한 가지씩 깨닫게 되었다. 말씀이 있는 공동체에서 자신의 죄를 보고 '내탓이요'를 고백하면서 서로를 돕는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우리들교회가 10년전 개척 준비 기도회를 우리 집에서 시작하면서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만 오라’고 했다. 이 말씀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교회의 핵심가치이다. 매주 아무것도 없고 이런저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었다. 그랬더니 말씀과 불같은 성령으로 예배 때마다 기름을 부어주셔서 살아나게 하셨다. 그러니 더욱 힘든 사람들이 몰려왔다. 이런 분들이 살아나서 또 다른 성도들을 도왔고 그래서 지금까지 온 교회가 난리가 난 것처럼 도우면서 왔다. 수년전 교인이 몇 명되지 않았을 때, 개인 파산 신청자들을 교회가 돕겠다고 회생 신청을 하라고 했더니 40명이나 신청을 했다. 변호사비를 들여 이들을 돕는데 추수감사헌금을 다 쓰게 되었다. 우리들교회가 고백공동체이다 보니 부끄러워서 하기 힘든 개인 회생 신청까지도 이렇게 했던 것이다. 빚진 분들이 이처럼 교회에 왔지만 설교 때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가라’고 외치니 적어도 우리들교회에 온 이후로 빚은 지지 않게 되었다. CEO 출신의 머리가 희끗한 남자성도도 경비일을 하고, 명문대학 출신의 여성성도도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다보니 힘든 사람들이 오면 살아나는 교회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우리들교회 슬로건인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는’ 핵심가치에는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을 언제나 초청하는 문화가 저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죄악을 부끄러워하게 하는 교회
우리들교회의 정체성은 '죄악을 부끄러워하게 하는 교회'이다. 성도들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게 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들은 어떤 사건에서도 자기 죄를 먼저 보고 그것을 나눈다. 사실 죄악을 부끄러워하는 회개의 감정은 어떤 마음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상위 감정이다. 그것은 남녀간 사랑, 부모간 사랑 등 이런저런 감정과는 비교조차 되지않는다. 그러다보니 교회에서는 장년뿐 아니라 청년부, 중고등부, 유년주일학교까지 목장 나눔을 하는데, 서로 자신의 죄를 고하느라고 여념이 없다. 주일학교의 일곱 살 아이들도 홈페이지에 목장 보고서를 올리면서 치열하게 자기 죄를 보고 회개한다.
나는 개척 이후 지금껏 예배와 목장 모임을 통해 성도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간증을 나눌 때, 그 안에서 치유가 일어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숨겨진 상처와 정면으로 마주할 때, 치유가 일어남을 성도들 스스로가 경험했다. 물론 자신의 힘으로 수치와 상처를 드러내기는 어렵다. 생각만 해도 죽고 싶은 불륜과 간음의 일을 스스로 드러내기는 힘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님께서 드러내주시고,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만천하에 수치가 드러나게 됨이 축복이다. 시편을 써내려간 눈물어린 다윗의 고백이 오늘 우리에게 은혜를 끼치는 것처럼 주홍같은 내 죄와 수치가 드러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게 된다면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힘든 일에 대해 처방을 내리면 대부분 듣기를 꺼려한다.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의사가 “부부 싸움도 하지 마시고, 너무 염려하지 마시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세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들은 “내가 부부 싸움 하는 것 당신이 봤어요? 왜 남의 사생활을 간섭하고 그래요!” 이렇게 나온다. 본질은 그것이 아닌데 말꼬리를 붙잡고 이야기한다. 나를 향해서 뭔가 문제가 있고 잘못됐다는 말 듣기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리더는 잘 들어야 한다. 이 사람이 부지중에 잘못을 했는지, 고의적으로 했는지를 판단하고 그것을 근거로 그 사람이 듣기 싫어해도 처방을 잘 내려야 한다. 야고보서 5:16에서도 “병 낫기 위해서 서로 죄를 고하라”고 하신 것처럼 리더도 죄를 고해야 한다. 죄의 고백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죄를 고할 때, 도피성에 들어올 사람이 자기 죄를 고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교회에서는 예배시 모든 대표기도에 자기 심판적 죄고백이 면면에 흐르고 있다. 대표기도에 나타나는 공동된 특징은 하나님 앞에서와 신앙공동체인 교회 앞에서 죄의 고백과 믿음의 고백 그리고 찬양의 고백이 포함된 자기 심판적 고백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표기도자는 그동안 자신이 걸어온 길이 죄된 길이었으며 자만과 고집, 교만으로 가득찬 진실성이 와해된 삶이었음을 고백한다.
다음은 한 성도가 주일 예배 때 대표기도 한 내용의 일부이다.
사랑이 많으신 주님. 부자나 가난한 자에게나 차별 없이 똑같은 말씀으로 권고하시고, 위로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오늘 이 아침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가 이 성전에 넘칠 줄 믿습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겉으로는 혼자 거룩한 척 하면서 유부녀와 음란을 행했고, 회사에서는 의로운 척 하면서 뇌물도 받았습니다. 토한 것을 먹는 개처럼 매번 넘어지는 나의 음란 사이트가 나의 요단 동편이기도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남도 속이고 나도 속이며 스스로 합리화 하면서 그리스도 밖에 살았던 저입니다.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죄가 다 보이는 그것이 바로 저입니다. 이 모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죄로 인한 처벌은 내 삶의 결론이라고 인정하며, 앞으로 내게 어떤 수치와 조롱이 있더라도 피하지 않고 잘 감당하기 원합니다.(중략)

목장(소그룹)에서의 고백
매주 목장에 참석하는 성도들에게는 내가 강해한 말씀이 공통된 화제가 된다. 이들은 훈련 받은 대로 말씀을 나누고 자기 삶을 드러내고 연약한 부분과 죄를 고백한다. 그리고 문제들을 해결하고 삶에 적용할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를 구체적으로 받아간다. 목장을 이끌어가는 목자는 삶을 나누고 말씀의 인도를 받는 훈련이 되어 있기에, 자기부터 먼저 본인의 문제점을 내어 놓고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본 자기 죄를 고백한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모든 목원이 편하게 자신의 문제를 내어 놓는다.
그래서 목장에서는 구성원들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 소속감과 안전감을 느끼는 분위기를 만들어야한다. 성령 안에서 사랑과 격려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목자부터 자기의 문제점을 내놓고 회개하기에 목원들 역시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고백하게 된다. 목원들 역시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과 죄의 종류가 비슷하기에 서로에게 마음의 안정감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된다.
불안한 마음을 갖고 참여하는 모임에서 자신의 마음을 열고 속마음을 나누며 변화와 성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목원들의 진실한 죄고백이야말로 모든 구성원들이 환영받고 있으며 모임의 소속된 일원임을 느끼도록 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들교회 성도 개개인의 고난과 죄고백 간증이 다양한 만큼 목장이 가진 고난의 종류 역시 매우 다채롭다. 실직, 부도, 외도, 이혼, 중독은 기본이고 가출, 우울, 강박, 다자녀, 무자녀, 다단계, 소송 등 인간사회 모든 문제들이 다 모여 있다. 특히, 부부 목장마다 닉네임(nick name)과 전공과목(우리들교회에서는 각자의 고난을 전공과목이라 칭함)을 가지고 있는데, 등록하는 새신자들을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의 종류에 따라 알맞게 목장에 배치하여 편하게 고백을 할 수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예컨대 목장의 닉네임으로는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하는 <귀머거리 목장>, 자녀고난과 물질고난이 전공과목인 <고혈압 목장>, 아내를 목발 삼아서 절름절름 끌려오는 <목발 목장>, 허탄한 사람들이 모여서 통탄할 고백을 하고 감탄을 하는 <3탄 목장>, 목자는 다단계, 부목자는 경마로 망한 <부도 목장>, 알콜중독과 도박중독이 있음에도 BMW 를 몰고 다니는 <정신병원 목장>, 부부가 부도로 치고받고 싸우고 교도소까지 다녀온 , 고난이 없이 평범하고 촌스러운 <평촌 목장>, 박사, 의사, MBA, 오케스트라 단원 등이 많지만 정작 믿음이 없다는 <빛 좋은 개살구 목장> 등 외도, 자녀고난, 부도로 인한 고난과 아픔의 장르와 종류가 다양하다. 이렇듯 자신의 수치와 죄, 고난으로 인한 전공과목을 드러내어 다른 성도를 체휼하고 살리고 나아가니 성도들의 공동체 생활이 즐거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죄고백 공동체를 위한 담임 목사의 역할에 대해 3회에 걸쳐 나누었다. 죄고백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은 우선적으로 담임목사가 이러한 공동체를 형성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 자신이 먼저 성도들 앞에서 진실한 삶의 고백이 선행될 때, 비롯될 수 있다. 모쪼록 이 땅의 교회가 아둘람 공동체처럼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이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세상의 도피성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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